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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워즈니악 ㅣ 생애, 근황 그리고 잡스와의 관계

by 딜픽스 2023. 2. 17.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 창립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컴퓨터 과학자이자 기업가이다. 나 또한 이름은 많이 들어봤으나 아는 게 별로 없다 느껴졌다. 오늘 포스팅에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생애, 근황 그리고 잡스와의 관계를 알아보자.

 

젊은 스트브잡스와 워즈니악

 

생애

스티브 워즈니악은 1950년 8월 11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태어났다.

워즈니악은 초기에 전자 제품과 기술에 대한 관심을 키워 10대 대부분을 전자 제품을 수리하고 라디오 및 컴퓨터 단말기와 같은 장치를 만드는 데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에 등록했지만 컴퓨터에 대한 관심을 추구하기 위해 1년 후 중퇴했다.

1970년대 중반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I 컴퓨터를 개발했다. 애플 I은 키보드, 모니터 또는 케이스 없이 판매되는 싱글 보드 컴퓨터였다. 주로 자신의 컴퓨터를 만들고 프로그래밍하려는 애호가를 위해 설계되었다. 애플 I의 성공은 1980년대 초에 가장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컴퓨터 중 하나가 된 애플 II의 개발로 이어졌다.

워즈니악은 1985년에 교육과 자선 활동을 포함한 다른 관심사들을 추구하기 위해 애플을 떠났다. 그는 이후 CL9(TV용 리모컨을 개발한 회사), 휠스 오브 제우스(무선 GPS 기술을 개발한 회사), 에포스(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하여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회사) 등 여러 회사를 설립하거나 공동 설립했다.

기술 산업에서 일하는 것 외에도 워즈니악은 자선 및 교육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자선 단체 및 교육 활동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학교에서의 컴퓨터 교육을 지지했다.

오늘날 워즈니악은 기술 산업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있으며 컴퓨터 개발에 대한 그의 공헌은 널리 존경받고 있다.

아래엔 스트브 잡스와 워즈니악에 관계에 대해서 알아볼건데  스티브 잡스에 대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https://strangecollector.tistory.com/entry/%EC%8A%A4%ED%8B%B0%EB%B8%8C%EC%9E%A1%EC%8A%A4%ED%98%81%EC%8B%A0%EA%B3%BC%EB%94%94%EC%9E%90%EC%9D%B8%EC%9D%98%EC%84%A0%EA%B5%AC%EC%9E%90

 

스티브 잡스 ㅣ 혁신과 디자인의 선구자

애플의 공동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는 현대 기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1955년 2월 24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잡스는 격동의 삶을 살았으며 세상에 깊은 영향

strangecollector.tistory.com

 

스티브 잡스와의 관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고 상징적인 기술 회사 중 하나인 애플사의 공동 설립자였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1971년에 만났다. 그들은 전자 제품과 취미에 대한 공통 관심사로 유대감을 형성했으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금세 친구가 되었다.

워즈니악은 애플 초기 제품의 기술 천재였다.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 재능이 있는 그는 애플 I 및 애플 II 컴퓨터 제작을 담당했다. 반면 잡스는 사람들을 동원하고 회사 제품을 판매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비전과 창의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케팅 능력과 세부 사항에 대한 관심으로 카리스마 있고 주도적인 리더였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가 항상 완벽하지는 않았다. 잡스는 자신을 통제하고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로 인해 공동 작업 및 돈 문제에 대해 워즈니악과 충돌했다. 예를 들어 잡스가 아타리에서 일했을 때 그는 게임 콘솔 디자인을 단순화하는 대가로 5,000달러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워즈니악에게 모든 일을 시켰다. 나중에 균등하게 나누기로 약속한 금액의 절반인 700달러만 주었다. 이 사건은 기만적이고 착취적이며 세뇌적인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잡스의 성격 장애의 한 예로 들고 있다.

이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수년 동안 친한 친구였다. 그들은 보완적인 기술과 세계 최고의 컴퓨터 구축에 대한 열정으로 뭉쳤다. 그들은 함께 애플 I과 애플 II를 만들었고 컴퓨터 산업에 혁명을 일으킬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워즈니악이 80년대 중반에 애플을 떠난 후 관계가 틀어졌다. 잡스는 회사의 통제권을 유지하는 데 점점 더 몰두하게 되었고, 다른 문제 중에서도 특히 애플 주식 매각 및 지적 재산권 소유권에 대해 워즈니악과 충돌하게 되었다. 잡스도 워즈니악의 새로운 사업에 대해 걱정했고, 워즈니악이 프로그 디자인이라는 회사에 리모컨 설계를 의뢰하자 거칠게 반응했다.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잡스와 워즈니악은 애플에서의 공유된 경험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했다. 잡스는 죽기 직전에 워즈니악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다시 일하게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워즈니악은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 자신의 웹사이트에 잡스의 사진을 올리고 애도하며, 한 인터뷰에서는 잡스를 언급하며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요약하자면 잡스와 워즈니악은 협업과 갈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복잡하고 역동적인 관계를 가졌다. 그들은 기술과 혁신에 대한 공통된 열정으로 하나가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회사 중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함께 일했다. 그들의 의견 차이와 개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친구로 남았고 컴퓨터 산업에 대한 서로의 공헌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공유했다.

잡스와 워즈니악의 관계는 협력과 갈등이 섞여있어 복잡하다. 기술과 혁신에 대한 공유된 열정으로 단합된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회사 중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함께 일했다. 개인적인 성격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친구로 남아 있었고 컴퓨터 산업에 대한 공헌에 서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근황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그의 파트너였던 빌 게이츠와 폴 앨런처럼 억만장자가 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스토리지 회사 Fusion-IO의 수석 연구원이자 애플 고문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실제로 워즈니악은 100억 원이 넘는 집을 소유하고 있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워즈니악은 2006년 자신의 어린 시절과 애플 공동 창업까지의 여정을 담은 자서전 "iWoz"를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워즈니악이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혼자 애플 I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는 소문 등 워즈니악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쓰였다. 이 책은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어 그들이 인내하고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한다.

2009년 워즈니악은 도요타 프리우스의 전자식 스로틀 제어 프로그램과 브레이크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여 프리우스의 리콜로 이어졌다.

워즈니악은 현재 실리콘 밸리인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 살고 있다. 따뜻하고 친근한 성격으로 유명하며 블로그로 보내는 메시지와 이메일에 정기적으로 답장을 보낸다.

워즈니악은 또한 애플과 삼성의 특허 분쟁에 대한 캘리포니아 법원의 10억 달러 판결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했다. 특허 기술이 자유롭게 교환되고 사용될 수 있는 미래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워즈니악은 립코드 설립자 알렉스 필딩과 함께 2021년 9월 민간 우주 회사인 프라이빗 스페이스를 함께 설립했다.

 

스티브워즈니악

 

마무리

그의 이야기는 성공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며 가장 성공적인 파트너십과 우정도 복잡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인내, 상호 존중, 공유된 비전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일을 성취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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